가장 좋은 부품을 가장 비용이 많이 드는 방식으로 조립했다. 그러고도 이 가격에 제품을 내놓을 수 있다는 게 놀랍다.
애플은 전통적으로 고가지만 이용자 편의성을 중시한 제품으로 소비자들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아이패드2 부터는 최저 499달러로 가격을 끌어내리며 다른 업체들을 압박하고 있다. 최대 피해자는 2월 말 출시된 799달러짜리 모토로라 '줌'이 꼽힌다. 한때 '아이패드 대항마'로 기대를 모으던 줌은 스티브 잡스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가격 경쟁에 불을 붙인 뒤 불과 2만5000대만 팔렸다는 관측이 나올 정도로 몰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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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루미늄 케이스 하나에 8만~9만원
애플발 가격전쟁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부품은 알루미늄제 뒷면 케이스다. 미끈한 바깥면과 달리 안쪽은 온갖 홈이 파여져 있고, 그 안에 조그만 부품들이 들어차 있다. 고성능 NC(수치제어) 기계로 일일이 깎은 것이다. 이런 방식을 채택할 경우 소형 경량화가 가능하지만 생산성이 떨어진다. 국내에서 이 같은 형태로 가공하려면 8만~9만원은 줘야 한다.
움푹 파인 곳에 들어가는 각종 부품도 마찬가지다. 조립에 일일이 사람의 손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아이서플라이는 대만 업체 홍하이(鴻海)가 맡은 조립 비용을 개당 10달러로 봤다.
터치스크린은 겉면 강화유리, 터치 패널, 비산 방지 필름 등을 층층이 쌓아올려 한번에 만드는 하이브리드 방식을 택했다. 테두리 부분 플라스틱도 이 과정에서 함께 조립된다. 맨 앞면 유리는 미국 코닝사의 '고릴라 글래스' 강화유리가 쓰였다. 옆 테두리에는 전원 버튼 및 앞면 카메라용 회로 일부가 붙여져 있다. 조립업체는 대만 터치패널 전문업체 TPK. LCD 디스플레이 모듈에는 LED램프 36개가 가로 부분에 일렬로 붙어있다. 추정 원가는 80~90달러로 일반적인 9인치급 LCD 모듈 가격 50~60달러보다 비싸다.
애플의 '외줄타기'
이런 과정을 통해 추정된 아이패드2의 제조 원가는 520~540달러 정도다. 애플처럼 대량으로 조달하지 않고 시장에서 범용 부품을 구매한다는 가정에서다. 여기에 본사 임직원의 인건비 개발비나 애프터서비스에 필요한 비용을 생각하면 총 원가는 아무리 낮게 잡아도 700달러 선은 넘을 것이라는 게 공통된 의견이다. 아이서플라이가 추산한 제조원가 333.25~336.60달러보다 훨씬 높다.
전문가들은 이 같이 차이가 벌어지는 이유로 '초(超) 박리다매'를 유도하는 부품 조달 전략을 꼽고 있다. 애플은 한 종류의 제품을 수백만대 이상 생산하면서 이를 이용해 부품구입 비용을 대폭 끌어내린다. 부품업체들은 물량이 워낙 큰 데다 다른 업체와의 경쟁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고정물량이 확정돼 있기 때문에 신규투자를 하는데도 큰 부담이 없다. 자사 제품에 열광하는 수천만명의 '애플교(敎) 신도'를 갖고 있는 스티브 잡스만이 가능한 외줄타기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디자인 위해 나사·모듈·공학적 효율도 버렸다
일반적으로 휴대폰은 전자 부품을 한데 모으는 '모듈화' 설계를 채택한다. 조립 과정에서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다. 디자인은 모듈화 설계를 토대로 이뤄진다. 하지만 아이패드2는 거꾸로 돼 있다. 제품 디자인이 우선이고 설계와 부품 배치는 철저하게 디자인에 종속돼 있다. 앞면 터치스크린 모듈에 부착된 전원 버튼 및 앞면 카메라용 회로가 대표적이다. 메인 회로 기판도 마찬가지. 전체 제품 디자인에 맞춰 집약된 설계를 채택하다 보니 10단으로 된 기판의 각 층마다 연결용 구리선을 심어놓았다.
전문가들이 아이패드2를 분해해본 뒤 느낀점은 '쉽게 할 수 있는 부분을 무척 어렵게 처리해 놓았다'는 것, 그리고 애초에 설정해 놓은 디자인을 구현하기 위해서라면 공학적 비효율 정도는 감수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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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구성 희생
문제는 디자인 위주의 설계가 생산성은 물론 내구성까지 종종 희생시킨다는 점이다. 제품 맨 뒷면의 흑색 로고는 알루미늄 케이스에 구멍을 뚫고 플라스틱을 부착한 형태다. 플라스틱 판 두께가 얇아 바로 뒤 배터리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분해 전에 실시한 충격 시험에서 책상 모서리에 세게 내리치자 기기 가장자리가 우그러졌다. 스마트커버에 심어 놓은 자석도 허술하기는 마찬가지.스마트커버용 부품의 자력 세기는 4000가우스 정도로 휴대폰 안전 기준의 20~30배에 달한다. 신용카드를 옆에 오래 두면 카드 정보가 지워질 수 있는 수준이다.
애플이 이런 문제점들을 사전에 몰랐을 리가 없다. 애플은 아이패드를 비롯한 주력 제품을 대상으로 본체 틀에 나사를 쓰지 않고, 구동 회로가 모여 있는 모듈식 구성을 채용하지 않으며, 웬만한 부품들에는 타업체 로고들을 배제하는 등의 '3무(無) 정책'을 쓰고 있다. 이용자 편의성을 우선하는 디자인을 표방하지만 생산성 측면에서는 비효율적인 것들이 많다. 그래도 이런 방식이 먹히는 이유는 세계에서 가장 싼 값에 재료와 부품들을 조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커버용 삼각형 자석
아이패드2는 분해 과정부터 쉽지 않다. 나사를 쓰지 않고 용접 및 접착으로 부품을 조립했기 때문이다. 강력한 열풍기로 접착면을 녹인 뒤 일일이 뜯어내야 한다. 애플은 아이패드는 물론 PC제품 맥북시리즈에 알루미늄 일체형 케이스를 쓰고 있다. 스티브 잡스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하나의 알루미늄 덩어리로 만들어 무게를 크게 줄이고 강도를 높였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 경우 애프터서비스가 힘들어 기기에 문제가 생기면 아예 다른 기기를 지급해야 한다.
아이패드2는 자성을 이용해 동작을 제어하는 '스마트 커버' 액세서리를 채택하면서 자석 부품을 새로 집어넣었다. 기기 좌측면에는 작은 삼각 기둥 모양의 자석 2개를 쓴다. 보통 사각 기둥 형태지만,디자인에 맞추기 위해 비용 증가를 감수했다. 거꾸로 뒤집혀진 'ㄴ'자형 오디오 부품은 상당히 크다. 우수한 음질을 얻기 위해 큰 울림통을 집어넣었다.
배터리에 선명한 '애플 재팬'
배터리는 얇은 리튬폴리머 전지 3개가 병렬로 연결되어 있는 형태다. 맨 윗면에는 선명하게 '애플 재팬(Apple Japan)'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애플의 요구에 맞춘 배터리를 따로 설계해 만드는 제조업자개발생산(ODM) 방식이기 때문이다. '두뇌' 격인 CPU(중앙처리장치)는 애플이 자체 설계하고 삼성전자가 생산한 '애플 A5' 프로세서가 쓰였다. 전력제어용 반도체도 자사 요구 사항에 맞춰 따로 생산한 제품이다.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적 부품들은 자사 요구를 대폭 반영할 수 있는 ODM 방식을 선택했다.
이는 부품 성능 최적화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언제든지 다른 업체로 공급선을 바꿀 수 있다는 '무언의 선언'이기도 하다. 주요 부품들에는 전용 QR코드가 선명히 찍혀 있었다. 애플은 아이패드2부터 영문 및 숫자로 제조업체와 형식번호를 표시한 기존 방식을 버리고 QR코드를 채택했다. 부품업체들에 대한 애플의 장악력을 드러내는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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