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이집트 묘의 한 형식으로 사각추형의 구축물을 말한다.
쿠푸왕의 대피라미드 기준. 약 4600년 전 고왕국 3~6왕조 사이에 축조되었다.
한변 230M 높이 146.6M
사용된 돌의 갯수 2.5톤 무게의 230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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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미드의 신비
정확히 지구 땅덩어리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피라미드의 동서남북 각 면은 정확히 동서남북을 가리키고 있다.
기자의 3대 피라미드 크기는 수성 금성 지구의 크기 비율과 같고 스핑크스와의 거리를 계산하면 수성 금성 지구의 거리를 빛이 이동하는 속도와 같으며 정확히 수평으로 맞아 떨어진다고 한다. 또한 3대 피라미드의 자리위치가 오리온자리의 별자리 위치와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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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미드를 만든 이유
① 고대 이집트 파라오의 무덤
② 지구밖 외계인들의 주파수 교신 장치 혹은 대형 에너지 장치
③ 대형의 천문관측기
④ 거대한 곡식과 유물창고
⑤ 기타 등등.. 피라미드를 만든 이유는 아직도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이집트 인들은 왜 피라미드를 만들었을까?
①번의 가설 주장하에, 고대 이집트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사후세계로 가서 심판을 받고 고향의 별 시리우스에 돌아갔다가 다시 되돌아 온다고 하였다.
(이집트 인들이 천체관측에 상당한 지식과 관심을 가진것도 이런 이유때문이다.)
다시 탄생할것을 염두하여 육체는 전부 썩지않는 미라작업을 한 후 관속에 넣어 봉인하였다. 참고로 기자의 대피라미드에선 왕묘의 흔적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집트 시대에서 전기를 사용하였다?
피라미드의 내부는 칠흙같은 어둠이며 밀폐된 공간으로 인해 장시간 들어가있게 되면 산소부족으로 인해 죽는다. 산소가 부족하여 내부에서는 오랫동안 횃불도 사용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집트 인들은 어떻게 어두운 공간속에서 작업을 했으며, 예술적인 조각벽화를 빼곡히 채워 넣었을까? 우리는 에디슨이 전구를 발견했다고 하지만, 실은 상당히 오래전부터 전기를 사용해왔다고 한다. 이름은 바그다드의 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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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87볼트까지 전기를 생산할수 있는 이 전지는 이집트 피라미드 내부벽화에서도 발견 되었으며 실제 유물로도 발견 되었다. 우리 인류가 원래부터 알며 전해저 오던 잃어버린 지식이라고 한다.
피라미드는 누가 만들었을까?
내부벽화에서 알수 있듯이 이집트 인들이 만들었다. 허나 벽화에는 이집트 인들만 있는게 아니다. 인간과 생김새가 전혀 다른 외계인이 많이 그려져 있다. 이들은 단지 구경이나 지시만 할뿐 손에 흙을 묻히지 않는다. 그렇다면 고대부터 인류와 외계인이 조우했다는 사실은 어떻게 믿어야 할까?
피라미드는 이집트에만 있을까?
아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건설 될 당시 전세계적으로 피라미드가 건축되기 시작하였다. 대표적 예를 하나 들자면 테오티우아칸 (신들이 모이는 장소 라는 뜻)의 모든 피라미드 들의 위치는 태양계의 각 행성을 상징하며 정확히 그 비율대로 위치하고 있다.
그중 '체첸이트사' 라는 피라미드는 명왕성을 상징했는데, 인류의 과학기술로 명왕성을 발견한건 불과 몇십년 전 이다.
기자의 피라미드
4500년 전 고왕국 시대 건축. 지구촌 최대의 석조 건축물.
위치 :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 서쪽 13Km지점.
높이 : 가장 큰 쿠푸왕의 대피라미드 137M / 완공 당시 146.7M 42층짜리 빌딩의 높이.
면적 : 52000㎡
개수 : 210단, 230만개
돌의무게 : 평균 2500kg
소요시간 : 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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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피라미드를 10만명이 20년동안 만들었다는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이야기를 최초의 기록으로 남긴 사람은, 역사학의 아버지 “헤로도토스”였다. 즉, 그는 사제에게서 들은 이야기라면서 10만명의 이집트인들이 20년 동안 거대한 피라미드 건설에 매달렸다고 기록한 바 있다. 피라미드가 건설된 지 2천여 년이 지난 후에, 헤로도토스가 비로서 기록한 것이다.
이에 대해, 카이로의 독일 고고학 연구소장을 역임한, 라이너 슈타델만 교수는 ‘헤로도토스가 직접 기자에 가보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포문을 열었다. 즉, 직접 왔었다면 꼭 봐야 했고, 이를 기록해야만 했던 스핑크스의 머리를 그가 빠뜨렸다는 것이다. 그의 결론은 “그는 결코 기자에 간 적이 없고, 단지 이야기로 전해오는 이야기만 전해 들었을 뿐이다. 오늘날까지도 피라미드를 두고 이리저리 오가는 비슷한 내용의 이야기들을 말이다.”
피라미드 전문가, 라이너 슈타델만 교수는, 헤로도토스가 언급한 10만명 보다 훨씬 적은 인부들을 제시한다.
“대략 2만이면 족했을 것이다. 피라미드 본체에 5천, 돌 운반에 5천, 돌 가공에 5천, 인력 뒷바라지 하는 인원 5천이 필요했을 것이다.”
고고학자, 마크 레너 도 슈타델만의 의견에 동조한다. 레너는 1990년대초 이른바 <노바 실험>을 통해, 피라미드 하나 만드는데, 10만명 까지 필요하지 않다는 점을 증명했다. 그는 12명의 대원을 이끌고 실험에 착수했다. 단순한 도구만으로 석회암을 캐내게 했는데, 최고 2.5톤의 무게에 이르는 것을 포함, 총 186개의 암석을 단 21일만에 캐냈다. 그리고는 “노바 피라미드”를 만들었다. 레너는 이 작업이 예상보다 훨씬 쉬었다고 강조했다.
“당시 우리는 대원들의 힘을 합치면 2.5톤의 돌도 충분히 굴려서 운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헤로도토스는 쿠푸 피라미드가 20년 공사로 만들어진 것이라 서술했고, 이를 위해서는 당시 석공들이 휴일을 뺀 나머지 날 동안 매일 약 340개의 돌을 공급해야 했을 것이다. 이 경우, 레너의 계산법에 따르면, 1만명 보다 훨씬 적은 노동력 만으로도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피라미드를 완성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고 한다.
슈타델만은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이것은 당시 인구의 1%에도 해당하지 않는 수였다. 피라미드가 국가적 사업이었음은 분명하지만, 온 백성을 모두 동원해야만 하는 사업은 아니었다.”
그는 헤로도토스의 한계를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그가 기록할 때는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난 뒤였다. 그러다 보니 당시에는 이 건축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는 것이 없었다.따라서 그의 이야기는 주로 남들한테 전해들인 이야기들에 뿌리를 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배경에는 그런 엄청난 건축물을 주제넘고 비인간적이고 비도적적이고 외람된 것으로 간주하는 그리스적 이념이 강하게 깔려 있었다. 즉 헤로도토스는 사람들이 왜 그런 것을 만드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출처 - <임페리움>
출처 - <임페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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